기초과학 중심 물은 기억을 가질 수 있을까? — 수소결합과 분자구조의 신비
기초과학 중심 물은 기억을 가질 수 있을까? — 수소결합과 분자구조의 신비 물은 수소결합 네트워크와 양자진동을 통해외부 신호를 일시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구조적 특성을 가진다. 이는 완전한 의미의 기억이 아니라
에너지 패턴의 물리적 흔적으로서의 ‘정보 저장’이다. 물은 생명과 정보의 매개체로 작용할 수 있다.

1. ‘기억하는 물’이라는 흥미로운 과학적 가설
물은 지구 생명체의 근원이자, 인류 문명 전체를 지탱하는 가장 보편적인 물질이다. 그러나 그 익숙함 속에는 여전히 미해결의 과학적 수수께끼가 숨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물은 기억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흥미로운 가설이다.
이 개념은 1980년대 프랑스의 면역학자 자크 벵베니스(Jacques Benveniste)가 제시했다. 그는 어떤 물질을 물에 희석한 뒤, 원래의 분자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도 그 물이 여전히 생리학적 효과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즉, 물이 그 안에 있었던 분자의 “정보”를 기억하고, 이를 다른 분자나 세포에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과학계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실험의 재현성이 부족했고, 물리학적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물의 기억’ 개념이 완전히 허구로만 치부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일부 과학자들은 물 분자의 수소결합 네트워크와 양자진동(quantum vibration)이 정보를 일시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구조적 특성을 가진다고 본다. 즉, 물이 ‘기억’을 가지려면, 그 내부의 미시적 상호작용을 들여다봐야 한다.
2. 수소결합 — 물의 비범한 성질을 만드는 열쇠
물(H₂O)은 단순한 분자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의 결합은 매우 독특하다. 한 산소(O) 원자와 두 수소(H) 원자가 이루는 극성 분자(polar molecule)이며, 분자 간에는 수소결합(hydrogen bond)이라는 약한 전기적 힘이 작용한다.
이 수소결합은 단순한 정전기적 인력 이상이다. 물 분자들은 마치 끊임없이 재배열되는 네트워크 구조를 형성하며, 이 구조는 온도, 압력, 외부 전자기장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그 변화의 시간은 불과 피코초(10⁻¹²초) 수준이지만,
이 미세한 움직임이 물의 독특한 물리적 특성을 만들어낸다. 물은 높은 비열과 표면장력을 가지며, 얼음이 액체보다 덜 밀집되는 ‘비정상적’ 거동을 보인다. 이 모든 특성의 근원이 바로 수소결합 네트워크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가 외부 분자나 에너지 패턴에 따라 일시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물의 기억”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분광학적 연구에서는 물의 수소결합 구조가 특정 파장의 전자기 신호에 반응해 일정한 시간 동안 ‘구조적 흔적’을 남긴다는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이 현상은 완전한 ‘기억’이라기보다는, 물의 미세한 진동 패턴이 환경 정보를 일시적으로 인코딩하는 물리적 메모리 현상으로 볼 수 있다.
3. 양자진동과 물의 ‘정보 저장’ 가능성
물의 기억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하려면 양자역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물 분자 내부의 전자구름은 지속적으로 진동하며,
수소결합 사이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교환은 양자 수준의 상호작용을 이룬다. 이 과정에서 물 분자들은 특정 파장의 전자기 신호를 흡수하거나 방출하며, 집단적으로 공명(coherence)을 이루는 ‘양자 상태’를 형성할 수 있다. 이 양자 공명은 마치 수많은 분자가 하나의 리듬으로 진동하는 것처럼 동기화되어, 일시적인 정보 패턴을 공간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
이른바 “양자 수준의 기억(quantum-level memory)”이다. 물론, 이 상태는 극히 불안정하다. 온도 상승, 외부 충격, 잡음(thermal noise) 등으로 인해 이 공명 상태는 곧 붕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동안 물의 분자 배열이 외부 신호를 ‘흉내 내는’ 현상은 실험적으로도 포착된 바 있다. 이런 특성 덕분에 물은 단순한 화학 용매를 넘어, 에너지와 정보의 매개체로도 주목받는다. 생체 내 세포막 주변에서 물 분자가 특정 단백질 구조와 상호작용할 때, 그 진동 패턴이 단백질의 기능을 조절하는 데 관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4. ‘기억하는 물’의 과학적 의미 — 정보의 물리학
현재로서는 ‘물의 기억’이 생명 현상이나 약리학적 효과를 결정한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물이라는 단순한 물질 속에도 정보 물리학(information physics)의 단서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결국 분자 간의 에너지와 정보 교환으로 이루어진다. DNA, 단백질, 세포막 모두가 ‘물’을 매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그렇다면 물의 구조적 진동이 정보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설은 단순히 비과학적 상상이 아니라,
생명 물리학의 미시적 현실일 수도 있다. 결국 물은 단지 생명을 유지하는 용매가 아니라, 생명의 언어를 저장하고 번역하는 매체일 가능성이 있다. 그 기억은 인간의 의미에서의 기억이 아니라, 진동, 패턴, 에너지의 기억이다.즉, 물은 우주의 정보를 ‘흐름’의 형태로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